“너, 다시는 연구할 생각 하지 마라.” 논문 서브미션을 마치고 지도교수님은 학위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 물으셨다. 나는 학위를 받으면 포닥을 나가서 연구를 계속하러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교수님은 다시 생각해 보라고 재차 말리셨다. 리비전을 하던 어느 날, 교수님은 내 진로에 대해 질문이 아닌 답을 내리셨다. ‘네가 실패한 것을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며
시간을 셋으로 나누어 가질 수 있다면 과거와 현재, 미래 중 어느 조각을 가지시겠습니까? 미래를 선택한다면 당신은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나 부푼 기대감으로 살 수 있습니다. 과거를 가져간다면 지나간 기억을 추억하며 영원히 행복할 수 있죠. 그렇다면 현재는? 음 현재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라 그런지 딱히 매력적이지 못한 듯합니다. (이
어린아이들은 질문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과학자들이 종종 어린아이들 같은 면모가 있는 것은 대게 사람들이 염두에 두지 않는 것에 대한 질문들을 순수한 호기심만을 가지고 던지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스티븐 호킹이 낸 마지막 저서이며, 책의 끝장에서 스티븐 호킹은 앞으로 대중 사람들도 더 많이 과학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나는 꽤 오래전부터 다양한 곳에서 멘토링을 해왔다. 그러다 작년에는 감사하게도 한국장학재단에서 6~7 명 정도의 대학생들에게 진로, 진학, 취업 등의 주제로 한 학기 동안 멘토링을 진행하게 되었다.
지금은 눈물이 메말라 더 이상 울지 않지만, 심혈을 기울여서 한 실험이 잘되지 않을 때 눈물을 쏟던 대학원 저년 차 시절이 있었습니다. 실험과학자가 실험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과연 밥은 잘 벌어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이 가득 차 있던 시절, 지도교수님과의 면담 시간은 매우 잦았고 또 길었습니다. 과정이 긴 실험을 하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실수를 했을 때
길고 길었던 10년간의 미국 포닥생활을 마무리하는 논문이 억셉되었다. 10년의 포닥생활이라니.. 3년만 계획하고 미국에 왔던 나였는데 두 번의 포닥생활을 하게 되고, 논문이 억셉되는 시간이 길어지며 또 좋은 교수님 연구실에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이렇게 오래 있을 예정은 아니었지만 본의 아니게 길어져 버렸다. 논문 리뷰의 기간만 2년 가까이 소요된 후
P 공대의 숙제는 악명이 높았다. 졸업생 중 누군가는 이런 말을 남길 정도였다. “입학식과 졸업식 사이에는 숙제밖에 없었어요.” 물론 과장된 표현이다. 그러나 틀린 말도 아닌 이유는 한 학기에 평균 18학점, 그러니까 약 6과목의 수업을 들으면서 매 과목마다 쏟아져 나오는 숙제의 양이 가히 엄청났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 특성상 1학년 때는 전공과 상관없이
“안녕하세요, 다시 뵙게 되어 너무나도 영광입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울림입니다!” 어떤 독자분들이 새롭게 연재될 이 글들을 읽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연재를 시작하게 되면서 꼭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에 가벼운 인사말로 시작을 해보았다. 그리고 이전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두 읽어보고 왔다.
저는 지방의 일반계 사립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고등학생 눈에 세상만사는 불합리하게만 보였지만, 제가 나온 학교는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곳이었습니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가끔 이사장이 교실에 들어와서는 생물의 분류를 읊었습니다. 기나긴 분류 타령이 끝나면 학생들은 박수를 쳐야 했고 마음에 들면 용돈을 뿌렸습니다. 이사장이 학교에 오는 날이면 담임교사가 미
“너, 다시는 연구할 생각 하지 마라.” 논문 서브미션을 마치고 지도교수님은 학위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 물으셨다. 나는 학위를 받으면 포닥을 나가서 연구를 계속하러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교수님은 다시 생각해 보라고 재차 말리셨다. 리비전을 하던 어느 날, 교수님은 내 진로에 대해 질문이 아닌 답을 내리셨다. ‘네가 실패한 것을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며
시간을 셋으로 나누어 가질 수 있다면 과거와 현재, 미래 중 어느 조각을 가지시겠습니까? 미래를 선택한다면 당신은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나 부푼 기대감으로 살 수 있습니다. 과거를 가져간다면 지나간 기억을 추억하며 영원히 행복할 수 있죠. 그렇다면 현재는? 음 현재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라 그런지 딱히 매력적이지 못한 듯합니다. (이
어린아이들은 질문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과학자들이 종종 어린아이들 같은 면모가 있는 것은 대게 사람들이 염두에 두지 않는 것에 대한 질문들을 순수한 호기심만을 가지고 던지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스티븐 호킹이 낸 마지막 저서이며, 책의 끝장에서 스티븐 호킹은 앞으로 대중 사람들도 더 많이 과학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나는 꽤 오래전부터 다양한 곳에서 멘토링을 해왔다. 그러다 작년에는 감사하게도 한국장학재단에서 6~7 명 정도의 대학생들에게 진로, 진학, 취업 등의 주제로 한 학기 동안 멘토링을 진행하게 되었다.
지금은 눈물이 메말라 더 이상 울지 않지만, 심혈을 기울여서 한 실험이 잘되지 않을 때 눈물을 쏟던 대학원 저년 차 시절이 있었습니다. 실험과학자가 실험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과연 밥은 잘 벌어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이 가득 차 있던 시절, 지도교수님과의 면담 시간은 매우 잦았고 또 길었습니다. 과정이 긴 실험을 하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실수를 했을 때
길고 길었던 10년간의 미국 포닥생활을 마무리하는 논문이 억셉되었다. 10년의 포닥생활이라니.. 3년만 계획하고 미국에 왔던 나였는데 두 번의 포닥생활을 하게 되고, 논문이 억셉되는 시간이 길어지며 또 좋은 교수님 연구실에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이렇게 오래 있을 예정은 아니었지만 본의 아니게 길어져 버렸다. 논문 리뷰의 기간만 2년 가까이 소요된 후
P 공대의 숙제는 악명이 높았다. 졸업생 중 누군가는 이런 말을 남길 정도였다. “입학식과 졸업식 사이에는 숙제밖에 없었어요.” 물론 과장된 표현이다. 그러나 틀린 말도 아닌 이유는 한 학기에 평균 18학점, 그러니까 약 6과목의 수업을 들으면서 매 과목마다 쏟아져 나오는 숙제의 양이 가히 엄청났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 특성상 1학년 때는 전공과 상관없이
“안녕하세요, 다시 뵙게 되어 너무나도 영광입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울림입니다!” 어떤 독자분들이 새롭게 연재될 이 글들을 읽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연재를 시작하게 되면서 꼭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에 가벼운 인사말로 시작을 해보았다. 그리고 이전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두 읽어보고 왔다.
저는 지방의 일반계 사립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고등학생 눈에 세상만사는 불합리하게만 보였지만, 제가 나온 학교는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곳이었습니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가끔 이사장이 교실에 들어와서는 생물의 분류를 읊었습니다. 기나긴 분류 타령이 끝나면 학생들은 박수를 쳐야 했고 마음에 들면 용돈을 뿌렸습니다. 이사장이 학교에 오는 날이면 담임교사가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