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원숭이가 읽어주는 오늘의 과학기술] 매일 아침 커피 한 잔, 공부하는 뇌를 만들까?

분류
생명과학 | 분자생명
작성자
생물학 연구정보센터
작성일
2022-11-22
조회수
517

현대인의 생활을 묘사할 때 커피를 빼놓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에서 2019년 발표한 분석[1]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적인 성인은 연간 353잔의 커피를 마셨다고 하니 하루에 커피 한 잔씩 꼬박꼬박 마신 셈입니다. 커피를 소비하는 양상도 다양해서, 선별한 원두를 세심하게 관리하고 정성스레 드립 해서 즐기는 애호가들이 있는가 하면 과로와 야근을 견디기 위해 대용량 아메리카노나 믹스커피를 들이켜는 사람들도 있지요.

사람들이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역시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은 카페인의 각성 작용일 거예요. 커피의 기원에 대한 전설도 각성 작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전설에 따르면, 목동 칼디(Kaldi)는 키우던 염소들이 커피 열매를 먹은 날에는 밤새 잠도 자지 않고 날뛴다는 사실을 어느 날 알게 됩니다. 칼디는 알고 지내던 수도원장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고, 그러자 수도원장은 수도사들이 철야 기도를 할 때 졸지 않도록 커피를 끓여 마시게 했다는 이야기이지요.

믿거나 말거나, 서양의 계몽시대와 산업혁명도 커피의 각성 작용 덕분에 가능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유럽의 물은 석회질이 많아 함부로 마시면 병에 걸리기 쉬웠고, 때문에 중세 유럽인들은 물을 그냥 마시지 않고 술로 만들어 마시곤 했습니다.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란에 따르면[2] 당시 유럽인들은 그야말로 술을 물 마시듯 마셨기 때문에 사실상 하루 종일 취해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16~17세기에 커피가 유럽으로 전래된 이후 유럽인들은 맥주 대신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16세기 중반 무렵, 독일 함부르크에 사는 사람들은 연평균 500리터에 달하는 맥주를 마셨는데요,[3] 커피의 도입 이후 맥주 소비량은 전성기의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술기운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커피의 각성 효과를 맛보며 근대를 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지요. 아이작 뉴턴이 이 시대의 유명한 커피 애호가였다고 합니다.

현대에 이르러, 카페인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제법 다양한 연구가 되어 있습니다. 동물과 인간 모두에게서 학습과 기억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퇴행성 뇌질환의 진행을 막는 효과도 연구된 바 있습니다. 카페인 섭취 이후에 심폐능력이 유의미하게 향상되는 효과도 널리 연구되어 있어서, 전업 선수와 동호인을 막론하고 스포츠와 커피도 떼어놓기 어렵지요. 그런데 카페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분자생물학적 경로를 거쳐 인체에 영향을 주는지는 연구가 부족한 편입니다. 그리고 고카페인 음료를 일시적으로 섭취한 직후의 인지적·신체적 영향을 다룬 연구가 많지요. 하지만 현대인들처럼 일상적으로 카페인을 섭취하는 생물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습니다.

2022년 5월, 이 틈을 메우는 연구[4]가 한 편 발표되었습니다. 연구진들은 정기적인 카페인 섭취가 학습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기전을 연구하기 위해, 쥐에게 2주 동안 카페인이 섞인 물을 마시게 하고 인지 과제를 풀게 한 다음 쥐의 해마에 유전자 온톨로지(gene ontology) 분석을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카페인 섭취가 뇌의 해마(hippocampus)에서 후성유전학적 차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오랜 기간 꾸준히 커피를 마시면, 커피를 일시적으로 끊은 동안에도 학습 능력이 향상된 채로 유지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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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은 태어난 지 8~9주가 지난 성체 쥐를 대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실험군의 쥐들은 2주 동안 0.3g/L 농도의 카페인이 섞인 물을 마셨고, 대조군은 평범한 물을 마셨어요. 실험군 쥐의 카페인 섭취량은 인간으로 환산하면 대략 하루에 200~400 mg 정도에 해당합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의 카페인 함량이 대략 100~150 mg이니까, 사람으로 치면 하루에 2~3잔 정도의 커피를 마시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페인 섭취 기간이 종료된 이후에는 모리스 수중 미로(Morris water maze) 검사를 통해 쥐들의 공간 기억력을 평가했는데요, 짐작할 수 있듯이 카페인을 섭취한 쥐들이 탁한 물속에서도 플랫폼의 위치를 더 잘 기억해냈습니다.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저자들도 논문 본문에는 싣지 않고 보조자료(SI)에만 보고했고요. 이후에 연구진은 실험에 사용한 쥐를 해부하여, 카페인 장복이 해마 조직의 유전자 발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유전자 온톨로지 기법을 사용하여 상세하게 분석했습니다.

유전자 온톨로지가 워낙 변수가 다양하여 해석이 어렵긴 하지만, 대체로 저자들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카페인을 장복한 쥐의 해마의 뉴런에서는 시냅스의 글루타메이트계 조절에 관여하는 단백질의 발현이 늘어났습니다. 글루타메이트계 수용체들은 학습과 기억에 상당한 기여를 한다고 알려져 있지요.[5] 둘째, 해마의 신경세포가 아닌 세포들(non-neuronal cell)에서는 거꾸로 대사산물의 발현이 줄어들었습니다. 이 영향은 상당히 여러 층위에서 관찰되는데요,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대사도 줄어드는 한편 지방산의 세포 합성도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여요.
 

J. Clin. Invest. 132, e149371 (2022)

J. Clin. Invest. 132, e149371 (2022), CC BY 4.0.


저자들의 해석에 따르면, 카페인을 장복한 쥐의 해마에서는 신경세포의 활동이 비신경세포들에 비해 강화되었고, 이에 따라 학습과 기억에 필요한 정보처리 과정에서 신호 대 잡음비(signal to noise ratio)가 개선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그 결과 카페인을 섭취한 쥐들이 탁한 물속에서 안전한 플랫폼의 위치를 더 빠르게 학습하고 기억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카페인의 세포 수준 영향으로부터 동물의 행동 수준의 변화를 도출하는 논리인 셈이지요. 논문의 내용을 사람 수준으로 성급하게 확장해 보자면, 매일 커피 두세 잔을 마시는 행동은 장기적으로 두뇌의 학습 능력을 개선할 수 있으며 또한 커피를 잠깐 끊는다고 해서 이 효과가 금방 사라지지도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역시 커피는 연구자들의 훌륭한 친구인 거죠.

다만, 카페인 장복이 마냥 인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지적해야 하겠습니다. 2021년의 fMRI 연구에 따르면 커피를 습관적으로 섭취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불안이나 스트레스 수준이 높았거든요.[6] 우울증이나 불안 증세가 있는 사람들은 커피 섭취에 조금은 더 주의해야 합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운동 능력의 경우 카페인 장복의 영향은 조금 더 흐릿합니다. 카페인 섭취가 일시적으로 운동 능력을 개선한다는 보고는 많이 있는데요, 일상적인 카페인 섭취의 경우는 연구가 잘 되어 있지 않습니다. 카페인 섭취를 일시적으로 중단했다가 경기 직전에 고용량으로 섭취하는 트릭도 유행하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다는 보고도 많고요.[7] 사이클 선수들을 대상으로 수행된 2017년의 한 연구 결과[8]에 의하면, 평상시 카페인 섭취량은 심폐기능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고 다만 경기 직전에 카페인을 섭취했는지 여부만이 중요했다고 해요. 헬스장 가기 전에 커피 한 잔 정도는 고민하지 않고 마셔도 될 것 같습니다.

 

*참고 자료

[1] 박용정 외, 커피산업의 5가지 트렌드 변화와 전망, 한국경제주평(2019).

[2] Colin Marshall, How Caffeine Fueled the Enlightenment, Industrial Revolution & the Modern World: An Introduction by Michael Pollan, Open Culture (2021).

[3] Hamburg Marketing GmbH, Beercultur in Hamburg: 100 years of tradition and creativity (Retrieved Aug. 16, 2022).

[4] I. Paiva et al., J. Clin. Invest. 132, e149371 (2022).

[5] G. Riedel et al., Behav. Brain Res. 140, 1 (2003).

[6] R. Magalhães et al., Mol. Psychiatry 26, 6589 (2021).

[7] C. Pickering and J. Kiely, Sports Med. 49, 833 (2019).

[8] L. de Souza Gonçalves et al., J. Appl. Physiol. 123, 213 (2017).

 

글: 여원

핵심내용

현대인의 생활을 묘사할 때 커피를 빼놓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에서 2019년 발표한 분석[1]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적인 성인은 연간 353잔의 커피를 마셨다고 하니 하루에 커피 한 잔씩 꼬박꼬박 마신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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