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원숭이가 읽어주는 오늘의 과학기술] 우주에서 진행되는 신약 개발

분류
생명과학 | 분자생명
작성자
생물학 연구정보센터
작성일
2023-02-17
조회수
348

국제우주정거장(ISS)은 약 400 킬로미터 상공, 지구 저궤도(low Earth orbit)에 떠 있는 구조물입니다. 1980년대 초에 미국, 러시아, 일본 등의 국가들이 독립적으로 우주 정거장을 발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냉전 종식 이후에 각국의 우주 정거장 계획을 하나로 합쳐서 1998년 발사한 것이 ISS입니다. 원래는 2005년에 완공할 계획이었지만 정치적·경제적 문제로 늦어진 탓에 아직도 계획한 모듈을 모두 조립하지는 못했어요. 2022년에 NASA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ISS는 2031년까지 운용한 다음 남태평양에 안전하게 추락시키는 방식으로 폐기할 예정이라고 합니다.[1]

ISS가 처음 기획되었을 때의 목적은 심우주 탐사 지원과 관련 연구였습니다. 달이나 화성, 소행성대로 가는 탐사선에 들어갈 기반 기술을 실험하고, 인간이 우주에 장기 체류할 때 겪는 변화를 연구하는 거죠. 중력이 없는 환경에서 장기 체류하다 보면 근력이 약해지고 골밀도가 감소하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겪습니다. 현재 로켓 기술로는 지구에서 화성까지 여행하는 데 6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만약 ISS에서 장기 체류한 승무원들이 심각한 건강 이상을 겪는다면 다른 행성이나 항성계를 탐사하고 개척하는 건 매우 어렵겠지요.
 

우주에서 진행되는 신약 개발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얻은 단백질 결정의 사진입니다. 이미지 출처: JAXA


한편 ISS에서는 일견 우주 진출과 무관해 보이는 실험도 많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생물학이나 의약학 연구가 많이 이루어집니다. 이는 ISS가 미소중력(microgravity) 환경에서 실험을 진행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에요. ISS에서는 지구의 중력과 공전에 의한 원심력이 상쇄되면서 거의 중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ISS의 데스티니(Destiny) 모듈에는 미소중력과학 글러브박스(Microgravity Science Glovebox)라는 이름의 글러브 박스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조건에서 정밀한 과학 실험을 수행하는 장치지요. 2020년에는 코로나19 치료제인 렘데시비르(remdesivir)의 정제 실험을 수행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2]

우주정거장에 실험 재료와 장비를 보내는 데는 대단히 비용이 많이 듭니다. 스페이스X가 활동하며 로켓 발사 비용이 많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10kg의 화물을 지구 저궤도로 쏘아 올리는 비용은 현재 약 30만 달러 정도 되지요. 이만한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ISS에서 과학 실험을 수행하는 이유는 물론 지구상에서는 얻기 어려운 결과를 비교적 손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단백질이나 약물을 정제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미소중력 환경이 대단히 유리하기 때문이지요.

ISS에서 가장 많이 수행된 과학 실험은 구조생물학에서 주로 다루는 단백질 결정화입니다.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파악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단백질을 적절한 조건에서 결정화시킨 다음 X선 회절 패턴을 분석하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순도 높은 단백질 결정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특정 단백질을 깨끗하게 결정화시키는 완충용액 조건의 조합을 찾아내는 작업은 지난하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우주에서 진행되는 신약 개발

우주정거장에서는 중력이 원심력과 상쇄되기 때문에 중력의 영향이 거의 사라집니다. 미소중력 환경에서는 대류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촛불도 동그란 모양으로 불탑니다. 이미지 출처: NASA


왜 미소중력 환경에서는 단백질 결정이 잘 생성될까요? 반대로, 왜 중력이 있는 환경에서는 결정을 생성하기 어려울까요? 중력이 작용하면 용액에서는 대류나 침전 등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용액 속의 단백질 분자들은 용매의 국소적인 온도나 밀도가 바뀌면서 대류에 휘말려 움직이게 되고, 단백질 결정 씨앗 역시 중력에 이끌려 ‘아래쪽’으로 침전됩니다. 게다가 과포화된 단백질 용액에 중력이 작용하면 심각한 농도 불균형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밀도 높은 부분이 가라앉으면서 튜브 내에서 최대 10%까지 농도 차이가 발생하기도 하지요. 이렇게 균질하지 못한 용액에서는 깨끗한 단결정이 성장하기보다는 결정성 없는 단백질 덩어리만이 침전되기 쉽습니다.

반면 미소중력 환경에서는 무거운 단백질 분자들이 모일 수 있는 ‘아래쪽’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부력도 작용하지 않지요. 용액 내에 농도가 균질하게 분포하게 되고, 결정화 과정에서 국소적으로 단백질 농도가 낮아지더라도 갑작스레 용매의 흐름이 발생하지도 않습니다. 단백질 결정 조각들이 한 방향으로 침전하지도 않고요. 지구상에서 실험했을 때보다 더 균일하고 큰 단백질 결정을 얻을 수 있는 거고요.  
 

우주에서 진행되는 신약 개발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제작한 단백질 결정(왼쪽)과 지구상에서 제작한 단백질 결정(오른쪽)을 비교한 사진입니다. 이미지 출처: NASA


수용체 단백질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으면 그 구조에 맞추어 약물을 설계함으로써 신약을 빠르게 개발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바이오 제약 스타트업 마이크로퀸(MicroQuin)에서는 막관통단백질 TMBIM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ISS의 설비를 사용했는데요, CSO의 설명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실험을 진행했을 때보다 5~8년 정도 시간을 단축했다고 합니다.[3]

우주개발 프로젝트는 으레 흥미롭기는 하지만 ‘쓸모’가 없다고 비판받곤 합니다. 하지만 우주정거장 실험을 통해 통상 15년이 걸리는 신약개발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우주 사업의 ‘쓸모’를 좀 더 어필할 수 있겠지요. 미국의 ISS 국립 연구소에서도 자신들의 성과를 발표하면서 단백질 결정 연구와 제약 사업 지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4]

서두에 언급했듯, ISS는 2031년에 퇴역할 예정입니다. 이후에 ISS의 기능은 달과 화성 탐사를 지원하는 루나 게이트웨이(Lunar Gateway)와 민간 우주정거장으로 분리될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제약 업체들이 신약 개발에 저중력·미소중력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용 우주정거장을 발사해서 상업적으로 운용하려는 기업도 벌써 여럿 등장하고 있어요. 지금도 미소중력 실험을 컨설팅하는 업체가 존재하고요. ‘우주 실험실’이 2020년대 들어 떠오르고 있는 우주 개발 산업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된 겁니다.

 

*참고 문헌

[1] Scientific American/Mike Wall, NASA Plans a Fiery End for the International Space Station by 2031 (Feb. 3, 2022).
[2] NASA, Using microgravity to compat COVID-19 (Jul. 24, 2022).
[3] C&EN/Shi En Kim, Pharma goes to space (Nov. 13, 2022).
[4] ISS National Laboratory/Amelia W. Smith, Probing Proteins: Leveraging Microgravity for Medically Important Molecular Crystallization (Aug. 7, 2019).


글: 여원(필명)

핵심내용

국제우주정거장(ISS)은 약 400 킬로미터 상공, 지구 저궤도(low Earth orbit)에 떠 있는 구조물입니다. 1980년대 초에 미국, 러시아, 일본 등의 국가들이 독립적으로 우주 정거장을 발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냉전 종식 이후에 각국의 우주 정거장 계획을 하나로 합쳐서 1998년 발사한 것이 ISS입니다.

원문링크정보

https://me2.do/5atKogm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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